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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성경 2026-10-08] 사사기 19:11-21 나눔지

매일성경 · 2026-10-08 · 사사기(Judges) 19:11 - 19:21

소그룹에서 그대로 쓰실 수 있는 나눔지입니다. 아래 질문을 순서대로 따라가시면 한 번의 모임이 됩니다.

> 오늘의 한 문장 — 언약 백성의 이름표를 달고도 무관심에 갇힌 기브아의 닫힌 문턱 앞에서, 거류민 노인의 값없는 환대는 하나님 나라 백성이 지켜야 할 참된 긍휼의 자리를 밝혀 줍니다.

여는 이야기

  • 낯선 장소나 새로운 공동체에 처음 갔을 때, 아무도 아는 척해주지 않아 서먹하고 외로웠던 경험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 예상치 못한 곳에서 누군가의 따뜻한 환대나 배려를 받아 큰 안도감과 위로를 얻었던 기억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관찰 — 본문은 무엇을 말합니까

1. 날이 저물어 갈 때 종이 여부스에 머물자고 제안하자, 레위인은 어떤 이유로 거절하며 어디로 가겠다고 합니까? (11-13절)

2. 기브아 성읍 넓은 거리에 머물던 레위인 일행을 발견하고 영접한 노인은 본래 어떤 배경을 가진 사람이었습니까? (15-16절)

3. 레위인이 자신들에게 먹을 양식과 나귀 여물이 넉넉히 있다고 말했을 때, 노인은 어떤 말을 건네며 그들을 집으로 데려갑니까? (18-21절)

해석 — 그것은 무슨 뜻입니까

4. 레위인이 이방 성읍인 여부스를 피해 굳이 동족의 땅인 기브아로 들어갔음에도 성읍 거리에 방치되었던 사건은, 당시 이스라엘 공동체의 영적·도덕적 현실에 대해 무엇을 폭로합니까? (12, 15절)

5. 성읍의 토착 베냐민 사람들은 침묵하고 에브라임 산지 출신의 '거류민 노인'만이 나그네를 알아보고 손을 내민 대조는 어떤 영적 교훈을 줍니까? (16-17절)

6. 노인이 나그네의 자급 능력을 개의치 않고 '그대의 쓸 것은 모두 내가 담당할 것이니 거리에서는 유숙하지 말라'(20절)고 선언한 것은 구약의 환대법과 언약적 책임 측면에서 어떤 의미를 지닙니까?

적용 — 우리는 어떻게 살아냅니까

7. 내가 속한 교회나 소그룹 공동체는 낯선 이들이 찾아왔을 때 기브아의 차가운 거리처럼 무관심합니까, 아니면 노인의 집처럼 안도감을 주는 쉼터입니까?

8. 자신도 나그네 같은 처지였지만 기꺼이 문을 열었던 노인처럼, 오늘 내가 시간과 자원을 내어 정성껏 환대해야 할 내 주변의 '외로운 나그네'는 누구입니까?

9. 상대방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스스로 해결하려는 이웃에게, 조건이나 계산을 따지지 않고 먼저 다가가 품어주기 위해 내가 이번 주에 내려놓아야 할 마음의 장벽은 무엇입니까?

더 깊이

10. 창세기 19장에서 소돔에 들어간 천사들을 롯이 성읍 거리에서 건져 집으로 영접하던 장면과 본문의 기브아 상황을 비교할 때, 사사기 기자는 기브아를 어떤 도시와 겹쳐서 고발하고 있습니까?

11. 성경에서 나그네를 영접하고 환대하는 일(신 10:18-19, 롬 12:13, 히 13:2)을 단순한 개인적 친절을 넘어 언약 백성의 정체성을 가늠하는 핵심 표지로 다루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마무리 기도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이름을 가졌으면서도 곁에 있는 나그네와 고단한 이웃의 결핍에 무관심했던 우리의 메마른 마음을 회개합니다. 기브아 성읍의 닫힌 문들을 닮지 않게 하시고, 낯선 땅에서 거류하면서도 아낌없이 집과 양식을 열었던 노인처럼 우리의 손과 마음을 활짝 열어 환대하게 하소서. 우리 공동체가 차가운 세상 속에서 상처받고 지친 영혼들이 안심하고 쉼을 얻는 피난처가 되게 하옵소서.

이번 주 한 가지

이번 주간 소그룹이나 주변 이웃 중 홀로 있거나 낯설어하는 한 사람을 찾아가 따뜻한 음료나 식사를 대접하며 그의 이야기를 온전히 경청하기


📎 인쇄용 파일

_인도자 가이드에는 질문마다 코칭 노트가 붙어 있습니다 (참석자용 나눔지에는 없습니다)._

🗂 이 글의 정보
  • date · 2026-10-08
  • track · 매일성경
  • scripture · 사사기(Judges) 19:11 - 19:21
  • type · 나눔지
  • tags · 나눔지, 사사기, 삿, 사사기 19장, 사사기 19:11-21

ℹ️ 이 글의 ‘칼빈’·‘라이트’·‘왈트키’는 역할을 나누기 위한 에이전트 별칭이며, 실존 신학자 개인이나 그분들의 견해를 대변하지 않습니다. 실존 인물의 주장은 본문에서 출처와 함께 3인칭으로 인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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