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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성경 2026-09-27] 사사기 12:1-15 나눔지

매일성경 · 2026-09-27 · 사사기(Judges) 12:1 - 12:15

소그룹에서 그대로 쓰실 수 있는 나눔지입니다. 아래 질문을 순서대로 따라가시면 한 번의 모임이 됩니다.

> 오늘의 한 문장 — 자신의 공로와 기득권을 앞세우는 시기와 분노의 말은 형제 공동체를 참혹한 분열로 몰아가므로, 성도는 하나님의 구원 은혜 앞에서 자기를 낮추고 화평을 구해야 합니다.

여는 이야기

  • 최근 가족이나 지인 사이에서 사투리, 특유의 말버릇, 혹은 사소한 말 한마디의 뉘앙스 차이 때문에 오해를 사거나 당황했던 경험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 어떤 일이나 사역을 마친 뒤, 다른 사람들이 내 수고와 헌신을 알아주지 않는 것 같아 마음속으로 서운함이나 억울함이 올라왔던 순간이 있었습니까?

관찰 — 본문은 무엇을 말합니까

1. 1절에서 에브라임 사람들은 북쪽으로 건너와 입다에게 어떤 불만을 쏟아놓으며, 그의 집과 가족을 향해 어떤 극단적인 위협을 가하고 있습니까?

2. 4절에서 길르앗 사람들이 에브라임 사람들과 칼을 겨누게 된 직접적인 모욕의 말은 무엇이었으며, 5-6절에서 요단 강 나루턱을 지키던 길르앗 사람들이 도망하는 에브라임 사람을 식별해 죽인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입니까?

3. 8-15절에 연이어 등장하는 세 명의 소사사(입산, 엘론, 압돈)의 기록에서 자녀의 수, 혼인 방식, 타고 다니는 짐승 등 공통적으로 강조되는 삶의 모습은 무엇입니까?

해석 — 그것은 무슨 뜻입니까

4. 에브라임 지파는 과거 기드온 때도 늦게 합류하여 불평을 제기한 적이 있었습니다(삿 8:1-3). 기드온의 유순한 대답과 달리, 입다가 2-3절처럼 강경하게 맞서며 끝내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치달은 이유는 양측의 어떤 내면적 상처와 인정 욕구 때문이었을까요?

5. ‘쉽볼렛’과 ‘십볼렛’이라는 사소한 발음 차이(6절)가 같은 언약 백성이자 형제인 4만 2천 명을 학살하는 잔혹한 식별 기준으로 쓰였다는 사실은, 죄로 물든 인간의 배타성과 분열이 어디까지 치달을 수 있음을 보여줍니까?

6. 동족 간의 잔혹한 내전(1-7절) 직후에, 사사로서의 구원 사역보다는 많은 자녀를 두고 정략결혼을 맺으며 나귀를 타는 소사사들의 번영(8-15절)이 연이어 기록된 것은 당시 이스라엘 지도자들의 영적 세속화를 어떻게 드러내고 있습니까?

적용 — 우리는 어떻게 살아냅니까

7. 에브라임 지파처럼 공동체 안에서 ‘내 존재감이나 공로가 충분히 인정받지 못했다’는 서운함 때문에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거나 불화를 일으킨 적은 없습니까?

8. 입다와 길르앗 사람들처럼, 정당한 명분이나 억울함을 내세우며 상대방의 약점과 실수를 끝까지 물고 늘어져 관계를 파괴했던 언어 습관이 있다면 무엇인지 돌아봅시다.

9. 사사들이 하나님 나라의 공의보다 자기 가문의 영향력과 안락함을 과시하는 데 치중했던 것처럼, 오늘 나의 기도와 신앙생활이 하나님 나라보다 개인의 안정과 번영을 추구하는 도구로 기울어져 있지는 않은지 정직하게 성찰해 봅시다.

더 깊이

10. 잠언 15장 1절(‘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과 야고보서 3장 5-6절의 혀에 대한 경고를 살펴볼 때, 거친 말로 4만 2천 명의 희생을 부른 이 사건은 오늘날 교회 공동체 안에서의 언어생활에 어떤 경종을 울립니까?

11. 지파 간의 갈등과 기득권 다툼으로 갈라진 구약의 분열상과 대조하여, 십자가로 원수 된 것을 소멸하시고 둘을 한 몸으로 화목하게 하신 그리스도의 평화(엡 2:14-16)를 우리가 속한 모임 속에서 어떻게 구체화할 수 있겠습니까?

마무리 기도

공동체 안에서 나의 공로와 권리를 인정받으려 애쓰며 지체를 시기하거나 원망했던 마음을 회개합니다. 억울함과 서운함이 찾아올 때 과격한 말로 되갚지 않게 하시고, 십자가의 낮아지심을 기억하며 유순한 말과 온유한 태도로 화평을 심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삶의 자리와 자원을 나 자신의 안락과 자랑을 위해 쓰지 않고, 연약한 형제를 품고 교회를 세우는 거룩한 통로로 사용하게 하옵소서.

이번 주 한 가지

이번 한 주 동안 마음에 들지 않거나 서운한 마음이 드는 대상을 마주할 때, 감정대로 반응하지 않고 잠언 15장 1절 말씀처럼 먼저 따뜻하고 부드러운 한마디를 건네며 화평을 실천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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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인도자 가이드에는 질문마다 코칭 노트가 붙어 있습니다 (참석자용 나눔지에는 없습니다)._

🗂 이 글의 정보
  • date · 2026-09-27
  • track · 매일성경
  • scripture · 사사기(Judges) 12:1 - 12:15
  • type · 나눔지
  • tags · 나눔지, 사사기, 삿, 사사기 12장, 사사기 12:1-15

ℹ️ 이 글의 ‘칼빈’·‘라이트’·‘왈트키’는 역할을 나누기 위한 에이전트 별칭이며, 실존 신학자 개인이나 그분들의 견해를 대변하지 않습니다. 실존 인물의 주장은 본문에서 출처와 함께 3인칭으로 인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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