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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성경 2026-09-22] 사사기 9:46-57 나눔지

매일성경 · 2026-09-22 · 사사기(Judges) 9:46 - 9:57

소그룹에서 그대로 쓰실 수 있는 나눔지입니다. 아래 질문을 순서대로 따라가시면 한 번의 모임이 됩니다.

> 오늘의 한 문장 — 인간의 잔혹한 권력욕과 헛된 자존심은 결국 비참한 자멸로 끝나며,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은 은밀한 악행까지도 결코 묵과하지 않으시고 공의로 되돌려 갚으십니다.

여는 이야기

  • 일상생활이나 취미 활동 중에 사소한 일임에도 '이것만큼은 남에게 지고 싶지 않다'며 끝까지 고집부렸던 경험이 있다면 가볍게 나누어 봅시다.
  • 내가 세워둔 철저한 계획이나 자신만만했던 생각이 아주 사소하고 예상치 못한 변수 하나 때문에 완전히 빗나갔던 기억이 있습니까?

관찰 — 본문은 무엇을 말합니까

1. 46-49절에서 세겜 망대의 백성들은 아비멜렉의 공격을 피해 어디로 도망쳤으며, 아비멜렉과 그의 무리는 그들을 진압하기 위해 각각 어떤 도구와 행동으로 보루를 불살랐습니까?

2. 50-54절에서 데베스의 망대를 똑같은 방식으로 불사르려 다가갔던 아비멜렉은 누구에게 어떤 일격을 당했으며, 치명상을 입은 직후 자신의 부관에게 급히 내린 명령은 무엇이었습니까?

3. 55-57절에서 우두머리 아비멜렉이 죽자 그를 따르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떤 행동을 취했으며, 성경 저자는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의 비극적 종말 배후에 누가 계셨다고 선언합니까?

해석 — 그것은 무슨 뜻입니까

4. 세겜 사람들은 위기 속에서 '엘브릿 신전의 보루'(46절)를 최후의 안전지대로 여겼으나 그곳이 도리어 1,000명이 불타 죽는 무덤이 되었습니다. 자신들이 불의한 학살 자금을 대어주며 의지했던 우상 신전이 죽음의 덫으로 변한 장면은 무엇을 폭로합니까?

5. 아비멜렉은 '한 바위' 위에서 형제 70명을 도륙했던 자인데, 이름 없는 '한 여인'이 던진 '맷돌 위짝'에 두개골이 깨졌고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여인에게 죽었다는 소리를 듣지 않겠다'(54절)며 체면에 집착했습니다. 이 모습은 인간 권력과 죄악의 본질을 어떻게 보여줍니까?

6. 저자는 이 사건을 우연한 전쟁 사고가 아니라 '하나님이 악행을 그들의 머리에 갚으신 것'(56-57절)이자 요담의 저주가 응한 것으로 규정합니다. 악인이 승승장구하는 것처럼 보이는 혼란한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의 공의는 어떻게 일하고 계십니까?

적용 — 우리는 어떻게 살아냅니까

7. 아비멜렉처럼 위기나 실패의 순간에도 '남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까'를 두려워하며 내려놓지 못하는 내 안의 헛된 체면과 자존심은 무엇인지 정직하게 돌아봅시다.

8. 세겜 사람들처럼 하나님이 아닌 다른 대상(재정, 인간관계, 세상의 지위나 안전장치)을 '견고한 망대'로 삼고 의지하다가 오히려 불안과 올무에 빠졌던 영역은 없습니까?

9. 세상의 부조리나 억울한 일 앞에서 조급하게 인간적인 복수나 수단을 쓰려 하지 않고, 모든 악행을 감찰하시며 결국 공의로 갚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기 위해 이번 주에 내려놓아야 할 태도는 무엇입니까?

더 깊이

10. 사사기 9장 15절과 20절의 '요담의 우화'를 본문과 연결해 볼 때, 불의한 야합으로 시작된 관계가 결국 서로를 태워 공멸하는 과정은 성경이 경고하는 '심은 대로 거두는 영적 법칙'(갈 6:7)을 어떻게 확증합니까?

11. 사사기 4-5장에서 가나안 군대장관 시스라가 여인 야엘의 손에 쓰러진 사건과 본문에서 아비멜렉이 이름 없는 여인의 맷돌에 맞아 파멸한 사건을 비교해 볼 때, 하나님께서 역사의 교만한 압제자들을 다루시는 독특한 방식은 무엇입니까?

마무리 기도

우리의 숨은 악행과 교만을 감찰하시며 역사를 공의로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썩어질 권력과 헛된 자존심을 좇아 살지 않게 하시고, 세상의 헛된 우상 신전이 아닌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우리의 영원한 피난처로 삼게 하옵소서. 세상의 불의 앞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공의로우신 주님께 모든 판단을 맡기며, 날마다 진리와 성실함으로 겸손히 주와 동행하는 공동체가 되게 하옵소서.

이번 주 한 가지

이번 한 주간 나의 자존심이나 체면을 방어하기 위해 내세웠던 핑계와 고집을 내려놓고, 손해를 보더라도 정직과 겸손으로 이웃을 섬기는 행동 한 가지를 실천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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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인도자 가이드에는 질문마다 코칭 노트가 붙어 있습니다 (참석자용 나눔지에는 없습니다)._

🗂 이 글의 정보
  • date · 2026-09-22
  • track · 매일성경
  • scripture · 사사기(Judges) 9:46 - 9:57
  • type · 나눔지
  • tags · 나눔지, 사사기, 삿, 사사기 9장, 사사기 9:46-57

ℹ️ 이 글의 ‘칼빈’·‘라이트’는 역할을 나누기 위한 에이전트 별칭이며, 실존 신학자 개인이나 그분들의 견해를 대변하지 않습니다. 실존 인물의 주장은 본문에서 출처와 함께 3인칭으로 인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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