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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성경 2026-09-21] 사사기 9:22-45 나눔지

매일성경 · 2026-09-21 · 사사기(Judges) 9:22 - 9:45

소그룹에서 그대로 쓰실 수 있는 나눔지입니다. 아래 질문을 순서대로 따라가시면 한 번의 모임이 됩니다.

> 오늘의 한 문장 — 탐욕과 폭력 위에 세워진 불의한 결탁은 필연적으로 자멸하며, 하나님은 인간의 악한 모략 속에서도 보이지 않는 주권으로 공의의 보응을 성취하십니다.

여는 이야기

  • 처음에는 뜻이 맞아 의기투합했다가, 사소한 욕심이나 오해 때문에 결국 계획이 어그러지거나 갈라섰던 경험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 사람이나 인간적인 조건을 굳게 믿었다가 기대가 무너지며 큰 실망과 배신감을 맛보았던 적이 있나요?

관찰 — 본문은 무엇을 말합니까

1. 23~24절에서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 사이에 불화와 배반이 시작된 영적 원인은 무엇이며, 하나님께서 이 사건을 통해 드러내고 갚으시고자 한 구체적인 죄악은 무엇입니까?

2. 26~29절에서 세겜에 들어온 에벳의 아들 가알은 어떤 자리에서, 누구의 혈통과 명분을 내세워 아비멜렉을 모욕하고 백성들의 마음을 선동합니까?

3. 36~45절에서 성읍 방백 스불은 복병을 보고 당황한 가알을 어떻게 조롱하며 내몰았으며, 성읍을 점령한 아비멜렉은 세겜 백성과 도성에 어떤 파괴적인 조치(45절)를 취합니까?

해석 — 그것은 무슨 뜻입니까

4. 23절에서 '하나님이 악한 영을 보내셨다'는 기록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통치와 악인들의 도덕적 책임 사이에서 어떤 신학적 의미를 갖습니까? (하나님이 악의 조성자가 아니시라면, 왜 이러한 섭리로 심판을 진행하셨을까요?)

5. 불과 3년 전에는 아비멜렉을 왕으로 세우고 형제 70명을 학살하는 데 은을 대주었던 세겜 사람들이, 이제는 가알의 호언장담 한마디에 아비멜렉을 저주하고 등을 돌리게 된 근본 이유는 무엇입니까?

6. 아비멜렉이 정복한 세겜 도성을 헐고 '소금을 뿌린'(45절) 행위는 고대 세계의 관습상 어떤 상징적 의미를 지닙니까? 자신의 권력 기반이자 외가 성읍을 스스로 영구한 불모지로 저주해버린 결말은 무엇을 고발하고 있습니까?

적용 — 우리는 어떻게 살아냅니까

7. 가알처럼 분위기나 혈기에 휩쓸려 내 능력을 과신하며 섣부른 장담이나 험담을 쏟아냈다가 곤경에 처한 적은 없습니까? 나의 말과 결정을 이끄는 것은 하나님의 지혜입니까, 아니면 인정 욕구와 교만입니까?

8.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처럼 오직 이익과 조건, 인간적 유대(혈연, 학연, 공통의 적)에만 기초해 맺은 관계는 위기 앞에서 쉽게 흔들립니다. 내가 속한 관계와 공동체의 기초에는 하나님의 언약과 진실함이 놓여 있습니까?

9. 내 뜻대로 되지 않거나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아비멜렉처럼 분노에 사로잡혀 관계와 상황을 '소금밭'(황무지)으로 만들 만큼 극단적인 보복을 시도한 적은 없습니까? 내 안의 칼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공의로운 섭리에 맡겨야 할 영역은 무엇입니까?

더 깊이

10. [갈라디아서 6:7~8 & 잠언 26:27]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는 말씀과 함정을 파는 자가 도리어 거기에 빠진다는 잠언의 경고는, 피 흘림으로 권력을 잡았던 아비멜렉과 세겜의 자멸 과정에서 어떻게 증명되고 있습니까?

11. [여호수아 24:24~27] 세겜은 과거 여호수아 앞에서 온 백성이 '오직 여호와만 섬기겠다'고 언약의 돌을 세웠던 거룩한 장소였습니다. 그러나 불과 몇 세대 만에 우상 숭배와 골육상잔의 폐허로 전락한 세겜의 비극은 오늘 언약 백성 된 우리에게 어떤 영적 경각심을 줍니까?

마무리 기도

세상의 이익과 인간적인 혈기로 헛된 결탁을 도모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진리와 성실함 위에 삶과 관계를 세우게 하옵소서. 억울함과 배신의 상처 앞에서도 보복의 칼을 휘두르지 않게 하시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악을 자멸케 하시며 공의를 이루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신뢰하며 묵묵히 십자가의 길을 걷게 하옵소서.

이번 주 한 가지

이번 주간 나에게 서운함이나 분노를 일으키는 대상을 향해 감정적인 맞대응이나 험담을 멈추고, 그 상황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겨드리며 축복의 기도를 3일간 드려보기.


📎 인쇄용 파일

_인도자 가이드에는 질문마다 코칭 노트가 붙어 있습니다 (참석자용 나눔지에는 없습니다)._

🗂 이 글의 정보
  • date · 2026-09-21
  • track · 매일성경
  • scripture · 사사기(Judges) 9:22 - 9:45
  • type · 나눔지
  • tags · 나눔지, 사사기, 삿, 사사기 9장, 사사기 9:22-45

ℹ️ 이 글의 ‘칼빈’·‘라이트’는 역할을 나누기 위한 에이전트 별칭이며, 실존 신학자 개인이나 그분들의 견해를 대변하지 않습니다. 실존 인물의 주장은 본문에서 출처와 함께 3인칭으로 인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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