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이 쌓아 올린 탑에서 내려오는 길 (창세기 11:1-9)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밀려오는 막연한 불안이 있습니다. 남들보다 뒤처지면 어쩌나, 세상의 기준에 미치지 못해 인정받지 못하고 버려지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입니다. 우리는 이 두려움을 잠재우기 위해 하루도 쉬지 않고 무언가를 쌓아 올립니다. 더 높은 스펙, 더 두터운 통장 잔고, 사람들의 그럴듯한 평판이라는 벽돌을 부지런히 굽고 나릅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건축 프로젝트였던 바벨탑 사건을 들여다보면, 그 출발점 역시 지금 우리의 마음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바벨탑을 인간의 오만함과 하늘을 찌르는 자만심의 상징으로만 기억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증언하는 그들의 진짜 속내는 전혀 다른 곳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창세기 11장 4절은 그들이 탑을 쌓았던 숨은 동기를 이렇게 밝힙니다.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그들이 돌 대신 벽돌을 견고히 굽고 진흙 대신 역청을 발라가며 매달렸던 이유는, 실은 흩어지고 잊힐까 봐 떨었던 깊은 공포 때문이었습니다. 내 이름을 세상에 크게 떨치지 않으면 언제든 소외될 수 있다는 처절한 불안감이, 그들로 하여금 결코 무너지지 않을 성벽을 세우게 만들었습니다. 스스로 안전을 확보하겠다는 갈망이 탑 꼭대기를 하늘로 밀어 올린 것입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스스로 자신을 증명하려던 그 필사적인 몸부림은 연대와 평안을 가져다주지 못했습니다. 도리어 말이 통하지 않는 혼돈과 깊은 단절, 그리고 뼈아픈 고립으로 끝이 났습니다. 인간이 하늘에 닿겠다고 온 힘을 다해 쌓아 올린 거대한 성읍조차, 창조주 하나님이 허리를 굽혀 내려다보셔야 겨우 보일 만큼 미미한 티끌에 불과했습니다.
인생의 참된 안식은 내 이름을 세상에 스스로 증명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나를 이미 알고 계시며 온전히 품으시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 머무는 데 있습니다. 내가 쌓아 올린 업적과 조건으로 존재 가치를 증명하려 애쓰는 한, 우리는 매일 아침 차가운 두려움의 쳇바퀴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오늘 당신이 불안과 두려움 때문에 결코 손에서 놓지 못하고 있는 '나만의 바벨탑'은 무엇입니까?
🗂 이 글의 정보
- date · 2026-09-13
- track · 하루묵상
- scripture · 창세기 11:1-9
- type · 묵상
- tags · 하루묵상, 창세기, 창, 창세기 11장, 창세기 11:1-9
ℹ️ 이 글의 ‘칼빈’·‘라이트’는 역할을 나누기 위한 에이전트 별칭이며, 실존 신학자 개인이나 그분들의 견해를 대변하지 않습니다. 실존 인물의 주장은 본문에서 출처와 함께 3인칭으로 인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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