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1일, 저는 계획서를 다시 썼습니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처음 계획서는 열의로 쓴 글이라 문장은 뜨거운데 무엇을 먼저 할지는 흐릿했습니다. 열흘쯤 지나 보니 "지금 뭘 하고 있어야 하지?"를 그 문서에서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실행 가능한 형태로 고쳤습니다 — 단계로 쪼개고, 완료 조건을 붙이고, 체크박스를 달았습니다.
훨씬 좋아 보였습니다. 각 항목이 명확하고, 진행률이 보이고, 오늘 할 일이 한눈에 잡혔습니다.
하루 뒤에 이상함을 느꼤습니다
무언가 빠져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그게 뭔지 몰랐습니다. 문서를 몇 번 다시 읽고서야 알았습니다.
꿈이 없었습니다.
처음 계획서에는 "왜 이걸 하는가"가 있었습니다. 평신도가 신학 자료에 닿을 수 있게 하는 것,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규모의 신학교 같은 무엇, 언젠가 온라인으로 사람을 모으는 일까지. 그런 것들이 문장으로 적혀 있었습니다.
새 계획서에는 그것이 한 줄도 남지 않았습니다.
지운 게 아니었습니다. 저는 지운 기억이 없습니다. 다만 체크박스로 옮기는 과정에서 "지금 당장 실행할 수 없는 것"이 자동으로 탈락했습니다. 온라인 교회개척은 이번 주에 할 수 없으니 항목이 되지 못하고, 신학교는 완료 조건을 쓸 수 없으니 표에 들어갈 자리가 없었습니다. 실행 가능성으로만 걸러 내니 먼 것부터 사라진 것입니다.
진짜 원인 — 도구가 목적을 골라냈습니다
체크리스트는 좋은 도구입니다. 그런데 체크리스트는 체크할 수 있는 것만 담습니다. 담을 수 없는 것은 우선순위가 낮아지는 게 아니라 아예 목록에서 없어집니다. 그리고 사람은 목록에 없는 것을 곧 잊습니다.
돌아보면 이건 계획서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그 뒤로도 같은 함정을 여러 번 만났습니다 — 측정할 수 있는 것만 관리하다가 측정하지 못하는 것이 조용히 망가지는 일. 뒤에서 이야기할 "침묵하는 실패들"도 뿌리가 같습니다.
고친 것
계획서를 감사했습니다. 처음 문서를 옆에 펼쳐 두고 한 문장씩 대조하며 물었습니다: 이 문장은 새 문서 어디에 남았나? 남지 않은 것들을 모아 별도 장을 만들었습니다. 지금도 그 장에는 이런 문구가 붙어 있습니다.
> 이 계획서는 코드에 구현된 것만이 아니라 원래 계획 전체를 추적한다. 미구현 미래 트랙이 후순위로 평탄화됐던 왜곡을 교정한 것이다.
그리고 문서 맨 앞에 "절대 잃지 말 것" 이라는 제목의 짧은 장을 두었습니다. 실행 항목이 아니라 방향입니다. 이 장은 진행률이 없습니다. 완료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워지지도 않습니다.
그날 남은 원칙
계획서를 고칠 때는 이전 계획서를 옆에 두고 한 문장씩 대조한다.
새 문서가 더 명확해 보인다는 느낌은 신뢰할 수 없습니다. 명확함은 덜어냈기 때문에 생기기도 합니다. 무엇을 덜어냈는지 세어 보지 않으면, 덜어낸 것이 정작 하려던 일이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완료 조건을 쓸 수 없는 목적도 문서에 남을 자리가 있어야 합니다. 그 자리를 따로 만들어 주지 않으면, 실행 가능한 것들이 문서를 다 차지하고 목적은 조용히 밀려 나갑니다.
저는 목회를 하면서도 같은 일을 겪었습니다. 해야 할 일 목록이 길어질 때, 정작 왜 목회를 하는지는 그 목록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도구는 죄가 없습니다. 도구가 고르는 것을 사람이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연재는 목사 한 사람이 AI 연구 에이전트 팀을 만들어 온 과정을 시간순으로 적는 기록입니다. 다음 화에서는 시편 23편 한 편이 버그 여덟 개를 한꺼번에 끄집어낸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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