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에서 이어집니다] 첫 글이 나오고 검수 체계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런데 글을 읽을 때마다 걸리는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 잘 쓴 글인데, 제 글이 아니었습니다.
"학습시켰다"는 말의 정확한 의미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저는 제 설교 1,200편이 넘는 원고를 AI에게 읽혔고, 그 뒤로 AI는 제 문체로 설교문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 문장에는 오해의 소지가 있어서, 먼저 정직하게 풀어 두겠습니다. 흔히 "학습시켰다"고 하면 AI 모델 자체를 내 데이터로 다시 훈련하는 것을 떠올립니다. 제가 한 것은 그게 아닙니다. 모델은 그대로입니다. 대신 설교문을 쓸 때마다, 시스템이 제 설교 서고에서 알맞은 원고를 골라 AI의 눈앞에 펼쳐 놓습니다. "이 사람은 이렇게 쓴다. 이렇게 써라."
말하자면 재훈련이 아니라 모방의 자동화입니다. 부교역자가 담임목사의 설교 원고 철을 옆에 두고 초안을 잡는 것과 같은 구조를, 기계가 매번 빠짐없이 하게 만든 것입니다. 이 방식의 장점은 정직함입니다 — 무엇을 보고 흉내 냈는지 매번 확인할 수 있고, 서고에서 원고를 빼면 그 순간부터 흉내도 사라집니다.
1단계 — 통계: 내 습관을 나도 몰랐다
6월 10일, 제 설교 원고 수백 편을 넣고 전수 통계부터 돌렸습니다. 그리고 저에 대해 제가 모르던 것들을 알게 됐습니다.
호칭이 그랬습니다. 저는 제가 "성도 여러분"이라고 부르는 줄 알았는데, 통계는 그 호칭이 오래전에 소멸했다고 말했습니다. 최근의 저는 "(주 안에) 사랑하는 성도님들"이라고 부르고 있었습니다. 마무리에도 정형이 있었습니다 — 기도가 "~하소서"로 끝나고, 중보의 고정구가 있고, 그날의 주제어가 축도 안에 다시 등장하는 패턴. 설교 중간에는 "왜요?"라고 스스로 묻고 답하는 버릇, "즉,"으로 바꿔 말하는 버릇이 반복되고 있었습니다.
이런 것들이 문체의 지문(指紋)입니다. 신학이 같아도 지문이 다르면 남의 글로 읽힙니다. 통계가 뽑아낸 지문을 규칙 카드로 만들어 설교자 에이전트에게 상시 주입했습니다.
2단계 — 시대 가중: 10년 전의 나는 내가 아니다
곧 두 번째 문제가 나왔습니다. 원고가 여러 해에 걸쳐 있다 보니, AI가 오래전 문체와 요즘 문체를 섞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은 변합니다. 10년 전의 저는 지금의 제가 아닙니다.
그래서 서고에 시대 가중치를 두었습니다. 최근 시대의 원고를 우선해 뽑고, 옛 원고는 참고 수준으로만. 단순한 장치인데 효과가 컸습니다 — "내 글 같은데 어딘가 옛날 사람 같다"는 위화감이 사라졌습니다.
3단계 — 같은 책의 최신 설교를 곁에: 1,292편의 색인
7월 초에 한 단계 더 나아갔습니다. 그 사이 서고 색인이 1,292편까지 자랐고, 이제는 설교문을 쓸 때 같은 성경책을 다뤘던 저의 최신 원고를 자동으로 찾아 곁에 놓아 줍니다. 시편 설교를 쓰면 제 최근 시편 설교들이, 창세기면 창세기 원고가 본보기로 들어갑니다.
같은 본문 계열에서는 설교자의 강조점과 어휘가 이어지기 마련입니다. 그 연속성까지 흉내의 재료로 쓰는 것입니다.
사고 — 폴더 이름 하나가 목소리를 지웠다
이 대목에는 부끄러운 사고가 하나 있습니다. 예고편으로 짧게만 적습니다.
7월 초 어느 날부터 "요즘 설교가 내 글 같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찾아보니 — 서재를 정리하며 설교 폴더의 이름을 바꾼 것이 원인이었습니다. 문체를 읽어 오는 장치가 옛 이름의 폴더를 계속 바라보고 있었고, 아무것도 못 찾자 오류도 없이 조용히 빈손으로 돌아갔습니다. 시스템은 문체 없이도 설교문을 척척 썼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몰랐습니다.
복구하고 나서 실제로 12,775자의 문체 자료가 다시 실리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 사고가 남긴 교훈 — 조용한 실패가 가장 비싸다 — 는 9화에서 동류의 사고들과 함께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문체보다 어려웠던 것: 번역
문체를 갖추고 나니 마지막 관문이 보였습니다. 학자들의 연구를 반영해 설교문을 쓰게 했더니, 글이 자꾸 신학 강의가 되는 것입니다. 지식은 정확한데 강단의 말이 아니었습니다.
고민 끝에 원칙을 하나 세웠습니다. 연구를 설교로 옮기는 일은 요약이 아니라 번역이다 — 지식을 덜어내는 게 아니라, 회중의 질문과 삶의 장면으로 옮겨 싣는 것. 그래서 설교자 에이전트에게 세 가지를 요구합니다. 개념이 나오면 삶의 질문으로 바꿀 것, 장면으로 묘사할 것, 전문 용어는 한 문장으로 풀 것. 연구의 깊이는 그대로 두고 옷만 갈아입히는 작업입니다.
이 장이 남긴 것
- "학습"의 실체는 읽히기다. 무엇을 읽고 흉내 냈는지 늘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 문체는 지문이다 — 본인도 모르는 습관을 통계가 먼저 안다.
- 사람은 변한다. 서고에는 시대 가중이 필요하다.
- 조용한 실패가 가장 비싸다. 빈손으로 돌아가는 장치는 소리를 내게 하라.
- 연구를 강단에 올리는 일은 요약이 아니라 번역이다.
다음 화는 이 시스템의 뼈대가 된 공부 이야기입니다 — 목사가 AI 논문을 읽는 법. 스탠퍼드의 '스몰빌' 논문에서 기억 설계를 가져오고, 어떤 논문은 사유를 적어 기각했던 과정, 그리고 "기억을 주는 것보다 무엇을 기억하지 못하게 할지가 더 어려웠다"는 이야기입니다.
🗂 이 글의 정보
- type · 개발이야기연재
- date · 2026-08-02
- tags · 제작기
ℹ️ 이 글의 ‘칼빈’·‘라이트’는 역할을 나누기 위한 에이전트 별칭이며, 실존 신학자 개인이나 그분들의 견해를 대변하지 않습니다. 실존 인물의 주장은 본문에서 출처와 함께 3인칭으로 인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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