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격 없는 자를 빚으시는 은혜 (로마서 9:6-29)
사람들은 흔히 자신의 혈통이나 배경, 혹은 남다른 성실함에서 삶의 안정감을 찾으려 합니다. 신앙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모태신앙이라는 익숙함, 오랜 봉사의 이력, 남들보다 더 열심을 냈다는 종교적 공로가 하나님 앞에서의 자격인 것처럼 착각하곤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러한 인간의 기대를 단호하게 무너뜨립니다. 아브라함의 혈통으로 태어났다고 해서 모두가 약속의 자녀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야곱과 에서의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의 선택 원리를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두 아이가 아직 태어나기도 전에, 그리고 어떤 선이나 악을 행하기도 전에 하나님은 야곱을 택하셨습니다. 인간의 행위나 조건이 선택의 기준이 된 것이 아니라, 오직 부르시는 분의 주권적인 뜻에 따른 선택이었습니다. 우리는 종종 "왜 에서가 아니라 야곱인가?"라며 하나님의 공평성을 따져 묻곤 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던지는 본질적인 질문은 정반대입니다. 속이는 자였던 야곱이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과 선택을 입을 수 있었는가 하는 은혜의 신비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9장 16절에서 구원의 근거를 분명하게 선언합니다.
>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구원은 내가 간절히 원해서 얻어낸 대가가 아니며, 남들보다 부지런히 달음박질해서 쟁취한 결과물도 아닙니다. 토기장이가 같은 진흙 한 덩이로 귀하게 쓸 그릇과 천하게 쓸 그릇을 빚을 주권적 권한을 가지듯, 창조주 하나님은 오직 선하신 뜻과 긍휼에 따라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엄격한 공의의 잣대만 적용되었다면, 죄로 물든 진흙과 다름없는 우리는 누구도 심판을 피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거룩한 주권으로 우리를 긍휼의 그릇 삼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참된 믿음은 내 의로움과 종교적 열심을 증명하는 데 있지 않고, 전적인 무자격자에게 베풀어진 하나님의 주권적 자비 앞에 겸손히 엎드리는 데 있습니다. 오늘 하루를 살아갈 때, 내 손에 쥔 조건과 행위에서 안정을 찾기보다 나를 긍휼히 여기사 자녀 삼아 주신 그 은혜의 주권을 온전히 신뢰해 보십시오.
오늘 당신은 자신의 조건과 종교적 열심을 의지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자격 없는 나를 택하여 빚으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긍휼을 붙들고 있습니까?
🗂 이 글의 정보
- date · 2026-08-23
- track · 하루묵상
- scripture · 로마서 9:6-29
- type · 묵상
- tags · 하루묵상, 로마서, 롬, 로마서 9장, 로마서 9:6-29
ℹ️ 이 글의 ‘칼빈’·‘라이트’는 역할을 나누기 위한 에이전트 별칭이며, 실존 신학자 개인이나 그분들의 견해를 대변하지 않습니다. 실존 인물의 주장은 본문에서 출처와 함께 3인칭으로 인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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