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그 자리에 찾아오시는 은혜
우리는 늘 자격이 있어야 사랑받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남들보다 더 열심히 살아야 하고, 흠 없는 모습을 보여야만 누군가의 곁에 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삶이 무너지거나 부끄러운 민낯이 드러날 때면 묵묵히 뒤로 물러나 숨으려 합니다.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손가락질받던 세리의 삶에 예수님이 느닷없이 찾아오십니다.
마태는 세관에 앉아 돈을 세며 사람들의 싸늘한 눈총을 견디던 사람이었습니다. 스스로도 회복할 수 없는 낙인이 찍힌 그곳에서 그는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이 그에게 다가와 단 한마디를 건네십니다.
"나를 따르라."
그 부르심은 행실을 고쳐 반듯해진 뒤에 주어지는 상장이 아니었습니다. 여전히 죄악 속에 머물러 있고 흠투성이인 그 자리 그대로 찾아오신 전적인 초청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의롭다고 믿는 사람들을 위해 오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연약함과 죄됨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병든 자들을 고치러 오셨습니다.
내가 가장 부끄러워 숨고 싶을 바로 그 자리가, 주님이 가장 먼저 찾아오시는 은혜의 자리입니다. 우리의 완벽함이 아니라 우리의 깨진 연약함이 그분의 손을 붙잡게 만듭니다.
오늘도 주님은 정죄의 눈 대신 긍휼의 눈으로 우리의 식탁에 찾아와 문을 두드리십니다.
그러므로 내 힘으로 버텨온 삶의 무거운 짐을 이제 그만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분의 부르심 앞에 아무런 포장 없이 정직하게 나아갈 때, 비로소 참된 회복과 생명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오늘 당신이 숨기고 싶을 만큼 부끄러운 그 자리는 어디입니까? 그곳에 찾아와 손 내미시는 주님께 어떤 마음을 고백하시겠습니까?
🗂 이 글의 정보
- date · 2026-08-12
- track · 하루묵상
- scripture · 마태복음 9:9-13
- type · 묵상
- tags · 하루묵상, 마태복음, 마, 마태복음 9장, 마태복음 9:9-13
ℹ️ 이 글의 ‘칼빈’·‘라이트’는 역할을 나누기 위한 에이전트 별칭이며, 실존 신학자 개인이나 그분들의 견해를 대변하지 않습니다. 실존 인물의 주장은 본문에서 출처와 함께 3인칭으로 인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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