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에서 이어집니다] 2026년 6월 10일, 계획서와 함께 열아홉 에이전트의 조직이 섰습니다. 이제 첫 글이 나올 차례입니다.
이어달리기
첫 주문은 창세기 1장 묵상 글이었습니다. 채팅창에 평문으로 "블로그 글 써줘"라고 적자, 안에서는 이어달리기가 시작됐습니다.
먼저 문헌 연구자가 서재에 질의해 창세기 1장에 대한 주석과 연구를 모읍니다. 그 결과를 받아 조직신학 담당이 교리적 검토를 붙이고, 설교자 역할이 그것을 묵상의 언어로 옮겨 초안을 씁니다. 초안은 곧바로 검수자들 앞에 섭니다 — 독자의 자리에서 읽는 평신도 검수자, 그리고 인용과 저작권을 보는 권리 검수자.
여기까지가 설계였고, 놀랍게도 첫 실행에서 릴레이 자체는 돌았습니다. 문제는 다른 데서 나왔습니다.
6점
평신도 검수자에게는 채점 기준이 있습니다. 은혜가 되는가, 알아들을 수 있는가, 지어낸 티가 나는가. 10점 만점에 기준선 미달이면 반려입니다.
첫 글은 6점을 받았습니다.
솔직히 저는 초안이 그럴듯해 보였습니다. 문장도 매끄럽고 신학적으로 틀린 말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검수자의 반려 사유를 읽고 수긍했습니다 — 요지는 "틀린 말은 없는데 마음에 남는 게 없다"였습니다. 매끄러운 것과 좋은 것은 다른 문제였습니다.
시스템은 반려 사유를 들고 다시 썼습니다. 두 번째 판은 제목까지 스스로 갈아 끼우고 올라왔고, 점수가 올라 통과했습니다. 이날 배운 것: AI 글의 품질은 쓰는 능력이 아니라 반려하는 능력에서 나옵니다. 이후 이 시스템에서 "한 번에 통과한 글"보다 "반려됐다 살아난 글"이 늘 더 나았습니다.
권리 검수자의 보류
같은 글이 두 번째 관문에서 또 멈췄습니다. 권리 검수자가 노란불을 켰습니다 — "인용의 출처 표기가 부족하다. 보완 전에는 발행 보류."
그래서 출처를 보완했습니다. 학자의 주장을 가져온 자리에는 이름을 밝히고, 인용 일곱 건은 실제 문헌의 쪽수와 대조해 확인한 뒤에야 발행 버튼 앞까지 갔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버튼은 — 1화에서 말씀드린 원칙대로 — 사람이 눌렀습니다.
첫 글 하나에 반려 한 번, 보류 한 번. 비효율처럼 보이지만, 저는 이 두 번의 멈춤이 이 시스템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합니다. 빨리 쓰는 AI는 흔합니다. 스스로를 멈춰 세우는 AI는 흔하지 않습니다.
"블로그는 설교가 아니다" — 규칙 1호
첫 글을 검토하다가 흥미로운 것을 발견했습니다. 초안이 자꾸 설교처럼 끝나려 했습니다. 마무리에 합심 기도가 나오고, 축도가 나오려 했습니다.
이해가 갑니다 — 이 시스템이 배운 한국어 신앙 문서의 상당수가 설교니까요. 하지만 블로그 독자는 회중이 아닙니다. 그래서 문체 규칙 1호를 만들었습니다: 블로그 글에 예배 의식(합심 기도·축도)을 넣지 않는다. 마무리는 묵상 권면까지만.
이 규칙이 "1호"인 이유가 있습니다. 이후 두 달 동안 이런 규칙이 계속 쌓였고, 나중에는 규칙을 지켰는지 기계가 검사하는 단계까지 만들게 됩니다. 규칙은 사람이 정하고, 준수 검사는 코드가 하는 구조 — 이것도 하네스의 일부입니다.
"조직신학자가 답답해서 성서학자를 뽑았다"
다음 날(6월 11일), 조직에 한 자리가 늘었습니다. 열여덟이 열아홉이 된 날입니다.
며칠 써 보니 답답함이 있었습니다. 교리 검토 담당은 본문을 자꾸 교리의 자리에서 내려다보며 읽었습니다. 그것대로 필요한 시선인데, 본문이 처음 읽혔던 1세기의 자리에서 올려다보는 시선이 없었습니다. 조직신학과 성서학은 실제 신학교에서도 다른 과목인데, 한 에이전트에게 둘을 겸직시켰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서학 담당을 따로 세웠습니다. 역할을 나누자 흥미로운 일이 생겼습니다 — 둘이 서로를 견제하기 시작했습니다. 교리에서 내려오는 해석과 역사에서 올라오는 해석이 한 글 안에서 부딪히고, 그 긴장이 글을 좋게 만들었습니다. AI 시스템 설계라기보다 목회 스태프 인사(人事)에 가까운 결정이었고, 지금도 저는 이날의 증원이 두 달 동안 가장 값싸고 효과가 컸던 개선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날 남은 것
- 품질은 쓰는 능력이 아니라 반려하는 능력에서 나온다. - 검수자는 쓰는 자와 다른 몸이어야 한다. - 문체 규칙은 발견될 때마다 적고, 준수 검사는 코드에 맡긴다. - 역할이 답답하면 프롬프트를 고치기 전에 자리를 나눠라.
다음 화는 많은 분들이 가장 궁금해하시는 이야기입니다 — 제 설교 1,200편을 읽게 했더니 AI가 제 문체로 설교문을 쓰기 시작한 과정, 그리고 "학습시켰다"는 말의 정확한 의미(재훈련이 아닙니다)에 대하여.
🗂 이 글의 정보
- type · 개발이야기연재
- date · 2026-08-01
- tags · 제작기
ℹ️ 이 글의 ‘칼빈’·‘라이트’는 역할을 나누기 위한 에이전트 별칭이며, 실존 신학자 개인이나 그분들의 견해를 대변하지 않습니다. 실존 인물의 주장은 본문에서 출처와 함께 3인칭으로 인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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